명확한 진단 없이 비극을 이용해 실리를 챙기려는 의도는?

김한준 기자

[게임플] "또 게임 탓 하겠네"

누군가의 신체나 생명을 다른 이가 해쳤다는 안타까운 소식이 전해질 때면 게이머들과 게임업계 관계자들이 자조적으로 내뱉는 말이다. 그리고 이 며칠 사이 다시 한 번 이러한 짧은 탄식이 게임업계에 번지고 있다.

서울 강서구에서 벌어진 안타까운 사건은 많은 이들을 충격에 빠트렸다. 평범한 일상을 보내던 한 청년이 흉기를 휘두른 범인의 손에 의해 눈을 감았다. 이 과정에서 이 사건을 막을 수 있었으나 부적절한 조치로 인해 일이 불거졌다는 정황이 계속해서 드러났다. 
 
이번 사건에 국민들을 공감을 보내고 있으며 분노하고 있다.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는 100만 건이 넘는 청원이 올라왔을 정도다. 심신미약으로 인한 처벌수위가 낮아지는 것을 걱정하고 이에 대한 견제를 하는 여론도 급격히 높아지고 있다. 모두 한 청년의 숨이 끊어진 '비극'에 공감하고 집중하는 눈치다.
 
하지만 이번 사건을 '비극'이 아닌 '현상'으로 보는 이들이 있는 모양이다. 언제나처럼 '게임에 빠진 이가 강력범죄를 저질렀다'는 식의 논리를 펼치는 이들은 이번 사건의 원인으로 게임을 지목하려는 모습이다. 
 
익숙한 모습이다. 서두에 이야기한 것처럼 게이머들과 게임업계 관계자들이 '이번에도 게임 탓 하겠네'라는 이야기를 하게 된 것은 이와 유사한 사례가 과거에도 잔뜩 있었기 때문이다. 어느 사건의 범인이 특정 게임을 즐겨했다는 소식은 사회적 이슈가 되는 강력범죄가 일어날 때마다 꼬리표처럼 따라붙었다. 
 
2000년에 중학생 형이 초등학생 동생을 살해한 사건이 있었다. 이 끔찍한 사건이 아직도 선명하게 기억되는 것은 당시 이 사건을 다루는 언론과 경찰의 방식 때문이다. 당시 언론은 형제가 사용하던 PC에 이스2 이터널이 설치되어 있었는데, 이 게임이 칼을 든 캐릭터가 몬스터를 산산조각 내는 잔인한 묘사를 하는 게임이라는 소식을 전했다.
 
당시 대부분의 게이머는 이러한 언론의 보도를 두고 황당함을 금치 못 했다. 이스2 이터널은 잔인한 묘사가 전혀 없는 게임으로 주인공과 몬스터가 부딪히면 능력치에 따라 알아서 대미지가 계산될 뿐, 공격 동작 같은 묘사가 일절 없는 게임이었기 때문이다.

당시에는 이러한 소식이 게임에 대한 몰이해에서 비롯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18년이 지나며 벌어진 여러 사건에서 이런 촌극이 이어지는 것을 바라보고 있으려니, 이제는 게임을 사회악으로 몰아가기 위한 명백한 의도가 느껴질 정도다.
 
이번 사건 역시 마찬가지다. '강서구 PC방 사건'의 범인이 2015년부터 PC방 단골이었다는 전혀 관계 없는 소식이 전해지기 시작했고, 경찰도 범인의 게임중독 성향에 대해 조사를 시작했다. 
 
PC방 관계자가 피해자로 엮인 사건이니 이번 사건과 PC방은 자연스럽게 연결된다. 하지만 PC방은 이번 사건이 벌어진 장소에 해당하는 '키워드'일 뿐이지, PC방이라는 장소가 사건이 일어나게 된 원인인 것은 아니다. 
 
기자는 단 한번도 술집이나 유흥업소에서 벌어진 강력범죄의 원인으로 술과 유흥문화가 지목되는 것을 본 적이 없다. 이번 PC방 사건과 같은 일련의 사건과 비교했을 때 술집, 유흥업소에서 벌어지는 사건의 빈도가 훨씬 잦음에도.
 
무슨 일이 벌어졌을 때 원인을 찾아서 이를 해결하는 것보다, '탓'을 하는 것은 훨씬 간단하다. 해결에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만 '탓'은 아무런 고민과 노력 없이 할 수 있다. 내 실수 때문에 벌어졌다는 인과관계를 떠넘기는 효과도 있으니 책임논란에서도 쉽게 벗어날 수 있다. 
 
슬금슬금 이번 비극을 두고 PC방과 게임을 연관지으려는 움직임이 드러나는 것을 보고 있으면 '어지간히 게임과 게이머, 게임산업이 만만한가보다'라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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