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임이 인공지능의 두뇌를 발달시키고 있다

[게임플] 지난 15일(토). 블레이드앤소울 토너먼트 2018 월드챔피언십 현장에서 조금은 이색적인 대결이 펼쳐졌다. 알파고와 이세돌 기사의 바둑 승부 이후 화두로 떠오른 인공지능(이하 AI)와 사람의 대결이 이벤트 매치로 진행된 것이다.

엔씨소프트 R&D 센터가 개발한 비무AI와 월드챔피언십에 오른 선수들이 직접 대결을 펼치는 형태로 진행된 이날 이벤트 매치는 세트스코어 2:1로 사람의 승리로 마무리됐다.

하지만 이날 대결에서 정말 눈길을 끈 것은 사람과 AI 중 어느 진영이 승리를 거뒀냐는 것보다는 게이밍 AI 기술이 어느 선까지 발전했느냐였다. 

실제로 대결 후 무대에 오른 이재준 엔씨소프트 AI 센터장은 패배에 아쉬워하는 모습을 보이기보다는 자신들의 AI가 승리할 것이라는 당초 예상이 빗나갔으니 이를 계기로 수정에 착수해야 할 것이라는 뉘앙스를 내비치기도 했다.

사실 사람과 AI의 대결은 제법 오래된 화두이며, 매번 사람들의 이목을 집중시키는 이슈이기도 하다. 

1990년대 후반에 펼쳐진 IBM이 개발한 AI '딥 블루'와 체스 세계챔피언 가리 카스파로프와의 체스 대결, 서두에 언급한 것처럼 2010년대에 진행된 AI와 이세돌 九단을 비롯한 세계 정상급 기사들과의 바둑 대결 등은 항상 많은 화제를 남겼다. 

흥미로운 것은 시간이 지나면서 AI과 사람의 대결이 펼쳐지는 장은 반상에서 게임으로 이동했다. 특히 사람들은 스타크래프트와 도타2 등 전략 장르 게임에서 펼쳐지는 AI와 인간의 대결에 큰관심을 보이고 있다.

AI와 사람의 대결이 관심을 받는 것은 '인간이 만든 존재가 인간을 뛰어넘을 수 있을 것인가'라는 철학적 화두의 답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유독 RTS와 MOBA에서 펼쳐지는 AI와 사람의 대결에 관심이 쏠리는 이유는 무엇일까?

이는 장르의 특수성에 기인한다. 한 쪽이 수를 두고 나면 다른 쪽이 충분한 생각을 하고 이에 대응하는 바둑이나 체스와 달리, RTS나 MOBA는 동시다발적으로 펼쳐지는 모든 상황을 유저가 제어해야 하는 차이점을 가진다. 

동시다발적으로 펼쳐지는 상황을 AI가 제어하기 시작한다는 것은 큰 의미를 지닌다. 우리가 일상생활에서 전화를 받으면서 길을 찾아간다거나, 트레드밀 위에서 달리면서 눈으로는 TV 화면을 보고 머리 속으로는 운동 후에 집에서 해야 할 일을 정리하는 것처럼 알고보면 복잡한 프로세스를 통해야 처리할 수 있는 일상의 영역을 AI가 일임할 수 있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즉, 게임을 두고 펼쳐지는 AI와 사람의 대결이 관심을 끄는 것은 사람들이 단지 '누가 게임을 더 잘하냐'에 집중하기 때문만은 아니다. 

이런 게임 대결을 통해 AI가 나의 일상을 대체할 수 있을 것인지에 대한 가능성을 찾을 수 있기 때문에 많은 이들이 AI와 사람의 게임 대결에 집중하는 것이다. 상황을 인지하고 상황에 맞는 적합한 대응을 찾아내고 이를 수행함과 동시에 지속적으로 상황을 살펴봐야 하는 게임의 특성이 AI의 발전을 이끌고 있는 셈이다.

1980년대 오락실 입구에는 흔히 '두뇌발달'이라는 문구가 적혀있고는 했다. 당시 이 말이 맞다, 아니다라는 이견이 오가고 했지만 게임이 인공지능의 두뇌를 발전시키고 있다는 것은 확실한 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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