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임이 마이너 문화에서 주류 문화로 자리매김 하는 단계

[게임플] WHO가 '게임장애' 코드의 ICD-11 기재를 내년 총회로 미뤘지만 게임업계는 해당 이슈를 두고 크게 술렁이고 있다. 

WHO는 지난해 12월에 국제질병분류 11차 개정안(ICD-11)에 게임장애(Game Disorder)를 새롭게 포함했다. 당시 WHO가 규정한 게임장애는 온라인 혹은 오프라인 게임 중 하나를 지속, 반복적으로 플레이하는 이들에게서 발생할 수 있는 것으로 게임이 일상생활이나 다른 활동보다 우선순위가 높아지고 게임 때문에 문제가 발생해도 계속해서 게임을 하는 경우를 뜻한다.

WHO의 이러한 결정은 당시 큰 화제가 됐다. 게임의 부정적 기능에 대한 찬반논란이 세계적으로 꾸준히 있었으나, 전세계 보건, 의료 규정에 큰 영향을 미치는 WHO가 게임을 장애를 유발할 수도 있는 인자로 규정했다는 것은 그간의 논란과는 그 급을 다른 것이었기 때문이다.

특히 한국에서는 WHO의 당시 발표가 세계 다른 지역 어느 곳보다 큰 화제가 됐다. 90년대부터 후반부터 게임에 대한 지속적인 규제안이 발의됐고, 2010년대에 들어서는 미성년자 대상의 셧다운제가 시행이 될 정도로 게임에 대한 부정적 인식이 강한 한국이었기에 WHO의 당시 결정이 또 다른 규제를 불러오는 것 아닌가 하는 우려가 커진 것이다.

물론 WHO의 ICD-11 '게임장애' 코드 등재는 게임이 무조건적으로 중독을 유발하는 인자라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WHO 정신건강 및 약물 남용 관계자인 블라디미르 포즈냑(Vladimir POznyak) 박사는 WHO ICD-11 기재 시도 소식이 처음 정해졌을 당시 외신과의 인터뷰를 통해 "게임을 즐기는 사람도 대부분 장애를 가지고 있지 않다. 그러나 특정 상황에서 남용하는 일은 부작용을 일으킬 수 있다. 술을 마시는 모든 이들이 장애를 가지고 있지 않은 것과 마찬가지로 게임 역시 그러하다"라고 말하기도 했다.

그럼에도 한국을 포함한 전세계 게임업계가 ICD-11 '게임장애' 코드 등재를 염려했던 것은 이를 근거로 게임에 주홍글씨를 찍으려 드는 이들이 분명히 존재하기 때문이다. 과거 국내에서 게임중독을 문제시 삼아 게임규제를 주장했던 이들은 유사과학으로 비웃음을 받았던 일본의 모리 아오키 교수가 집필한 '게임뇌의 공포'를 마치 의료계 전체의 정리된 견해인 것 처럼 내세워 자신들의 주장을 이어간 바 있다.

유사과학으로도 권위를 내세운 전방위 압박을 가해온 세력이 분명히 존재하는 상황이기에 이번 사안이 더욱 다급하게 여겨진다. 공신력을 지니고 있는 WHO의 발언의 골자를 조금만 비틀어도 여론을 충분히 호도할 수 있다는 것이 ICD-11 '게임장애'를 비판적으로 바라보는 이유이기도 하다.

또한 이번 ICD-11 '게임장애' 코드가 문제가 되면서 이번 문제가 정치적 대립으로 이어질 기미가 보이고 있다. 전세계 게임시장에는 게임중독 개념이 공론화 되면 적지 않은 금전적 이득을 볼 수 있는 세력이 엄연히 존재한다. 한국에서는 지난 2013년에 한국중독정신의학회가 게임을 4대 중독물질로 규정한 법안이 발의됐을 당시, 협회 회원들에게 보낸 안내문에 이를 '숙원사업'으로 표현한 바 있으며, 위정현 한국게임학회장은 '게임장애' 코드 등재를 찬성하는 세력이 4대 중독물질 관련 법안이 무위로 돌아간 후 조직적으로 움직이고 있다고 이야기하기도 했다.

이는 게임중독 사안이 표면적으로는 의견과 의견의 대립으로 보이지만 실제로는 각 의견 뒤에 자리한 조직과 조직의 대결구도로 자리잡았음을 의미한다. 

게임업계 입장에서 다행스러운 것은 과거에는 '게임규제 법안 발의'로 대표되는 게임중독을 찬성하는 이들에게 힘을 실어주는 정치 세력이 있었다면 이제는 게임중독에 반대하는 이들에게도 정치권의 힘이 그 뒤를 받혀주고 있다는 점이다.

게임기업 웹젠의 회장이었던 더불어민주당 소속 김병관 의원, 2016년에 게임진흥법을 발의한 노웅래 의원, 올해 지방선거 이전에 '게임산업진흥에관한법률 개정안'을 낼 것이라는 계획을 밝힌 바 있는 조승래 의원, 자유한국당 김세연 의원 등이 게임중독으로부터 게임산업을 보호하는 입장을 밝힌 대표적인 현역 정치인들이다. 

특히 이들 의원들은 오늘(30일) 국회의사당에서 진행된 '대한민국에서 게임이란 무엇인가' 토론회에 모두 자리해 게임산업에 대한 자신들의 입장을 보였다. 게임에 대한 긍정적 인식을 지닌 정치인들이 한 자리에 모여 공통된 주제로 의견을 제시했다는 것은 그간 정치권에서는 찾아볼 수 없던 행보다.

흥미로운 것은 게임중독을 두고 벌어진 정치권의 대립각이 진보 진영과 보수 진영이 확연히 다른 입장을 보이고 있다는 것이다. 이는 게임을 부정적인 미디어로 바라볼 것인지, 게임이 새로운 시대의 산업과 대표 문화가 될 수 있을 것인지를 바라보는 과거 세대와 현재 세대의 시선차이와 정확히 일치한다는 점도 눈길을 끈다.

게임중독에 대한 찬반논쟁이 정치권 대립으로 이어지고 있는 현실은 아이러니하게도 게임이 이제서야 마이너 문화가 아닌 주류문화의 반열에 올라섰다는 반증이기도 하다. 정치권 인물들의 대립이 한국 게임산업에 어떤 영향을 줄 수 있을까? 한국 게임산업은 이들의 정치적 행보에 어떤 영향을 주게 될까? ICD-11 '게임중독' 코드 등재가 다시 논의될 내년 5월 WHO 총회까지 게임업계가 관심을 갖고 지켜봐야 할 문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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