준비 안된 게임 일정에 밀려 내놓는 관행에 귀감이 되길

"예상보다 많은 이들이 사전 예약에 참가했다. 이렇게 많은 인원이 몰렸을 때 이를 감당할 수 있도록 서버를 더욱 튼튼하게 구축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다. 또한 유저들의 기대에 부응할 수 있도록 콘텐츠를 감수하기 위한 것이 이번 출시 연기의 첫 번째 목적이다"

당초 1월 중 출시가 예정됐던 검은사막 모바일의 정식 출시가 연기된 후, 이에 대한 이유로 펄어비스의 조용민 PD가 남긴 답변이다.

준비가 덜 돼서 못 내놓는다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이야기다. 식당에서 주문이 밀렸다고 다 익지도 않은 튀김을 손님에게 내놓는 일은 없으며, 과거에는 종종 그런 사례가 있었다고는 하지만 이제는 재활이 끝나지 않았는데 팀의 1선발투수를 복귀시키는 야구단은 찾아보기 어렵다.

하지만 이런 당연한 상식이 게임 쪽에서는 통하지 않는 경우가 많다. 오히려 정식 서비스를 시작하자마자 정상적인 플레이를 할 수 없을 정도로 점검을 하는 것을 '흔히 있는 일'로 치부할 정도로 준비가 미흡한 와중에 예정일에 맞춰 게임을 출시하는 사례가 많다.

기업 입장에서 이러한 선택을 하는 것은 나름의 이유가 있다. 퍼블리셔와의 계약을 맞추기 위해서, 상장사라면 주가 관리를 위해 '출시 강행'을 불사하는 사례도 적지 않다. 하지만 이런 이유들이 공감을 얻지 못 하는 것은 그 기저에 '유저의 존재감'이 전혀 없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펄어비스의 검은사막 모바일 출시 연기는 인상적이다. 현 상황으로는 몰려드는 유저들을 다 감당할 수 없어서 이에 대한 대응에 돌입했다는 것은 자신들의 준비가 미흡하다는 것을 인정했기에 가능한 일이다. 

또 하나는 현재 게임시장의 주요 상장사 중 하나임에도 자신들의 역량 부족을 드러냈다는 것이다. 강점은 드러내고 약점은 철저하게 감추는 것이 기업들의 대외 운영 전략인데, 펄어비스는 '국내 자체서비스가 처음이기에 아직 퍼블리셔로써 부족한 점이 많다'며 자신들의 부족한 부분을 대외적으로 공개했다. 이에 대한 대응을 충분히 하고 있지 않고서는 밝힐 수 없는 부분이다.

마지막으로 이번 출시 연기의 목적이 '유저'를 향하고 있다는 점이다. 유저들에게 제대로 된 콘텐츠와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는 단계가 아니기 때문에 출시를 연기했다는 조용민 PD의 이야기는 유저로 하여금 오히려 '준비를 철저하게 하고 있구나' 하는 기대를 하게 만든다.

이런 점 때문인지 출시 연기 소식에도 유저들의 반응은 예상보다 부드럽다. '급하게 나오느라 어설프게 출시하느니, 제대로 즐길 수 있는 게임을 보여달라'는 것이 커뮤니티 등지에서 확인할 수 있는 유저들의 여론이다. "이번에는 점검 없이 게임 좀 해보자"라는 이야기에 호응하는 유저들이 많다는 것은 그동안 국내 모바일게임 시장에 검수가 제대로 안 된 게임이 얼마나 많이 출시됐는가를 알 수 있게 하는 대목이다.

 

"글쎄, 재촉을 하면 점점 거칠고 늦어진다니까. 물건이란 제대로 만들어야지, 깎다가 놓치면 되나." 

중학교 국어 교과서에 실리며 많은 이들이 알고 있는 윤오영 작가의 수필. '방망이 깍던 노인'에 나온 등장인물인 노인의 말이다. 수필의 말미에. 화자는 방망이 깎던 노인을 찾아갔지만 그 노인은 이미 그 자리를 떠나 만날 수 없었다. 하지만 검은사막 모바일을 기다리던 유저들은 어쩌면 동대문 맞은편 길가에 앉아서 방망이를 깎고 있었다던 그 노인을 다시 만나게 될 것일지도 모르겠다. 

펄어비스가 어떤 형태로 검은사막 모바일을 깎아서 유저들의 손에 쥐어줄지 모르겠지만, 기왕 출시 연기를 했으니 '손에 딱 맞아서 호들갑을 떨게 만드는' 그런 게임을 출시했으면 좋겠다는 기대를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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