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구권에서도 찬반양론 갈리는 결정, 국내 여론 호도는 우려

세계보건기구(World Health Organization / 이하 WHO)가 국제질병분류 11차 개정판(이하 ICD-11)에 게임 장애(Game disorder)를 새롭게 포함시켰다. 이러한 소식이 전해지자 게임업계는 다시 한 번 게임중독 여론에 촉각을 곤두세우는 모습이다.

ICD-11에 포함된 게임 장애는 온라인게임 혹은 오프라인 게임 중 하나를 지속, 반복적으로 플레이하는 이들에게서 발생할 수 있는 것으로 명시되어 있다. 또한 게임이 일상생활이나 다른 활동보다 우선순위가 높아지고, 게임 때문에 문제가 발생하더라도 게임을 계속해서 플레이하는 경우를 뜻한다는 내용도 확인할 수 있다.

아울러 상대를 게임 장애로 진단하기 위해서는 최소 12개월 정도 같은 행동이 드러나야 하며, 경우에 따라서는 진단에 필요한 기간이 줄어들 수도 있다.

이번 ICD-11은 게임으로 인해 문제가 발생할 수도 있다는 가능성을 WHO가 인정한 것으로 풀이된다. 실제로 지나친 게임 플레이로 인해 사고사례가 종종 보도되는 것을 보면 이러한 WHO의 결정이 일견 타당하게 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이번 WHO의 결정을 두고 우려의 목소리를 보내는 이들도 적지 않다. 정확한 정보 없이 게임 플레이의 한 양상을 장애로 규정하는 것은 적합하지 못 하며, 이를 위한 연구가 아직은 더 필요한 상황에서 성급하게 결정을 내렸다는 것이 ICD-11에 포함된 게임 장애를 비판하는 이들의 의견이다. 

한편, WHO의 이번 결정이 전해짐에 따라 국내 게임업계는 크게 술렁이는 모습이다. 이번 WHO의 결정으로 게임산업에 다시 한 번 부정적인 이미지가 덧씌워지지 않을까 걱정하는 목소리도 어렵지 않게 들을 수 있다. 게임중독 이슈로 지난 수년간 몸살을 앓았던 게임업계였기에 이런 반응은 자연스럽게 느껴지기까지 한다.

WHO의 게임장애 등록은 게임이 무조건적으로 중독을 유발한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WHO 정신건강 및 약물 남용 관계자인 블라디미르 포즈냑(Vladimir Poznyak) 박사는 "게임을 즐기는 사람도 대부분 장애를 갖고 있지 않다. 그러나 특정 상황에서 남용하는 일은 부작용을 일으킬 수 있다"고 말했다. 술을 마시는 모든 이들이 장애를 갖지 않는 것과 마찬가지로 게임 역시 그러하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국내 게임업계가 이번 WHO의 결정에 우려를 표하는 것은 게임에 부정적인 시선을 가진 이들이 'WHO 가라사대'를 앞세워 여론몰이를 할 여지가 크기 때문이다. 실제로 과거 게임중독을 주장하는 여론 중 적지 않은 미디어와 단체가 일본의 모리 아오키 교수가 집필한 '게임뇌의 공포'를 내세우기도 했다. '짐승의 뇌'라는 표현을 사용했던 바로 그 책이다. 

이 책이 유사과학으로 일본 내에서도 비웃음을 당했음에도 이를 근거로 게임산업을 압박했던 이들이 WHO의 이번 ICD-11 게임 장애는 그 이름만 보면 마치 'WHO가 게임을 중독물질로 규정했다'는 식으로 여론을 호도할 여지가 크다. 게임업계가 우려하는 것도 바로 이 부분에 있다.

업계의 한 관계자는 "WHO의 이번 발표로 게임중독은 2018년 벽두부터 게임업계의 핫 키워드가 될 것이다"라며, "정식으로 질병 코드가 부여된만큼 WHO가 체계적인 연구를 통해 막연하게만 존재하는 게임중독의 위험성을 확실하게 규정하길 바란다. 오히려 그 편이 막연함을 무기 삼아서 게임산업을 옥죄는 이들을 막아내는 계기가 될 수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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