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너리즘을 극복한 일본 게임, 매너리즘에 빠져버린 서구권 게임

지난 2012년. 인디게임 페즈(FEZ)로 순식간에 게임계 유명인사로 떠오른 개발자 필 피쉬는 GDC 현장에서 당시 일본 게임산업을 'It sucks' 한 마디로 폄하했다. 인터페이스도 뒤떨어졌으며, 기술이 뒤떨어졌다는 설명이 뒤따랐다. 나중에 '일본게임 전체를 폄하한 것이 아니라 최근 일본게임에 대한 평을 한 것이다'라고 해명하기는 했으나 이 발언은 당시 적지 않은 파장을 남겼다.

그리고 5년이 지난 지금. 필 피쉬가 당시의 자신이 한 말을 돌아보면 어떤 느낌이 들까? 어쩌면 잠자리에 들려고 누웠다가 이불을 걷어차게 될지도 모르겠다. 올해 출시된 일본 개발사들은 몇년간의 부진을 털고 앞으로도 명작으로 꼽힐 게임들을 여럿 출시했다. 올해 서양 개발사들 역시 재미있는 게임을 다양하게 출시하기는 했으나 '자가복제에 불과하다'는 평을 떨쳐내지는 못 했던 것을 생각하면 흥미로운 부분이다.

2017년은 일본 게임산업이 다시금 게임산업의 메인스트림임을 증명한 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앞으로 역대 최고의 게임을 꼽을 때 반드시 언급될 것이 확실한 젤다의 전설: 브레스 오브 더 와일드를 비롯해 슈퍼 마리오 오딧세이, 니어: 오토마타, 페르소나5 등 여러 장르의 다양한 게임들이 출시되어 눈길을 끌었다. 

이러한 현상은 올해의 게임(Game of the year / GOTY) 집계 현황에서도 드러난다. 공동 2위를 기록한 호라이즌 제로 던을 제외하면 1위부터 5위까지 모두 일본 게임사들이 개발한 게임들이 자리하고 있다. 


2010년 이후 일본 게임은 GOTY 집계 현황에 한두 작품만 집계됐으며, 특히 GDC, GJA 등 주요 시상식에서는 크게 부각된 적이 없었다. 이를 감안하면 올해 일본 게임의 반격은 꽤나 흥미로운 것이다.

물론, 젤다 시리즈나 슈퍼마리오 시리즈는 서구권에서도 엄청난 인기와 인지도를 갖고 있는 게임들이기에 이들의 수상을 마냥 새로운 것처럼 풀이할 수는 없는 일이다. 일본게임이 부진에 빠졌던 시절에도 젤다와 마리오는 항상 높은 판매량과 좋은 평가를 놓친 적이 없었으니 말이다. 

하지만 이들 '투탑'의 뒤를 든든하게 받쳐줄 수 있는 게임들이 자리했다는 것과 이들 게임들이 독특한 세계관과 잘 짜여진 시나리오 전달방식을 통해 높은 평가를 받았다는 것은 괄목해서 바라볼 부분이다. 특히 소재 우려먹기, 세계관 우려먹기가 횡행했던 올해 서구권 게임들과 비교하면 더더욱 그렇다. 

실제로 호라이즌 제로 던, 어새신크리드: 오리진은 모두 좋은 평가를 받고 많은 판매고를 올린 게임들이긴 하지만 위처, 스카이림, 메탈기어솔리드 등 기존 오픈월드 게임들의 장점을 하나씩 차용해서 잘 버무린 것에 그친다는 평을 받기도 했다. 참신함을 지적하던 서구권 게임들이 어느 사이에 참신함이 부족하다는 평을 받게 된 것은 아이러니하다. 

기술력에 있어서 여전히 일본 게임사들은 고전하고 있다. 특히 그래픽 기술 측면에서는 아직까지도 서양 개발사들에 비해 무척이나 뒤쳐진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이를 극복하기 위해 세밀한 상호작용, 디자인, 아트 측면을 개성있게 발전시켜 서구권 개발사들이 갖지 못 한 자신들의 장점을 갖췄다는 것은 눈길을 끈다. 

올해까지 지난 십수년간 GOTY 현황을 보고 있으면 '자기복제에 그치게 되면 결국 경쟁력을 상실하게 된다'는 것을 알게 된다. 신선함을 잃었던 일본 게임업계는 오랜 기간 글로벌 경쟁력을 잃었으나, 새로운 타개책을 드러낸 올해는 마침내 그 긴 침묵을 깼다. 반대로 신선함을 내세웠던 서구권 개발사들은 매너리즘에 빠진 모습을 보이며 평가 측면에서 부진한 모습을 보였다. 

이는 한국 게임산업에도 교훈이 될 것으로 보인다. 특히 양산형 게임이 그 어느 때보다 심하게 범람하고 있는 최근 한국 게임시장에는 더더욱 말이다. 2017 일본 게임의 약진과 GOTY 현황을 지켜본 한국 게임산업의 재도약을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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