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율'과 '규제'가 공존할 수 있을까?

[게임플 김한준기자] 최근 EA가 전세계 게임업계 화제의 중심에 섰다. 스타워즈 배틀프론트2와 관련해 EA의 CFO 블레이크 요르겐센(Blake Jorgensen)이 '확률형 아이템을 완전히 포기하지 않겠다'고 말한 것이 원인이다.

스타워즈 배틀프론트2에는 랜덤박스를 구매해 등급이 구분된 스타카드와 크레딧을 무작위로 획득할 수 있도록 하는 확률형 아이템 시스템이 추가됐다. 이에 대해 유저들은 '스타카드의 등급에 따라 같은 기술도 효과가 달라진다. 이는 명백한 'Pay to win'이다'라며 날선 반응을 보였다.

이런 해프닝을 바라보는 국내 게임 유저들은 '왜 이제서야?' 하는 의아함을 가질 수도 있겠다. 확률형 아이템 논란은 국내 게임시장에서 지난 몇년간 가장 뜨거운 감자 취급을 받아왔기 때문이다. 특히 모바일게임 시장이 확대되면서 확률형 아이템은 계속해서 발전을 했다. 때로는 게임 발전속도보다 BM 발전속도가 빠르다고 느껴질 정도였다.

한국게임산업협회가 지난 7월부터 시행한 확률형 아이템 자율규제 강화안은 이러한 유저들의 '겜心'을 반영해 나온 정책이다. 확률형 아이템 자율규제 강화안은 게임 내 등급별 유료 아이템 획득 확률 정보를 공개하도록 하고, 게임 머니와 필수 아이템 등을 판매할 수 없도록 하는 것을 골자로 하는 정책이다. 

하지만 실효성에 대한 의문을 제기하는 이들은 정책 시행 이전부터, 정책 시행 이후에도 계속해서 목소리를 높여왔다. 실효성이 없다는 것이다. 이와 유사한 정책이 과거에도 있었음에도 큰 효과를 보지 못 한 것은 이행하지 않는 업체에 대한 불이익이 없기 때문이었는데, 확률형 아이템 자율규제 강화안에서 내세운 '명단 공개'라는 불이익은 게임 업체에게 큰 부담을 주지 않기 때문이다.

자율규제 강화안이 시행된지 약 5개월이 지난 지금. 이러한 우려는 현실이 됐다. 강화안 시행 한 달 후에는 모든 업체가 강화안을 지키고 있는 것으로 발표됐으나, 이후 두 달이 지난 9월 조사에서는 이행률이 70%에 그쳤다. 특히 확률형 아이템 논란이 강하게 일고 있는 모바일게임 업계의 이행률은 50% 수준으로 알려졌다. 

또한 자율규제 강화안 시행 이후 출시된 게임 중에는 오히려 이전 게임들보다 강력한 과금모델 설계가 완성된 게임들도 있다. 이는 자율규제 강화안의 파급력이 빠르게 줄어들고 있거나 아예 업계에 '과속방지턱' 같은 역할도 하지 못하는 것을 의미한다.

이러한 와중에 정치권 역시 국내 게임산업 확률형 아이템 문제를 지적하고 나섰다. 지난 10월 진행된 국정감사에서 더불어민주단 소속 손혜원 의원은 확률형 아이템을 도박이라며 비판했고, 모바일게임에 결제한도를 둬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같은 당 소속 신동근 의원 역시 확률형 아이템을 구매하는 심리는 도박과 비슷하다며 합리적인 감독 방안이 필요할 때라고 지적했다. 게임업계가 확률형 아이템에 대한 자정 의지를 가지고 있지 않다고 판단한 것이다.

사실상 확률형 아이템 자율규제 강화안은 이전의 정책들과 마찬가지로 실효성을 상실한 정책으로 게임 유저들에게 받아들여지고 있다. '믿어봤더니 달라진 게 없다'는 상실감은 국내 게임 유저들의 게임업체에 대한 신뢰를 손상케 했다.

흥미롭게도 최근 북미, 유럽 등지에서도 게임 내 확률형 아이템에 대한 비판적인 의견이 대두되고 있다. 벨기에 게임위원회는 확률형 아이템이 도박에 해당한다는 입장을 발표했으며 벨기에 법무장관 역시 '도박성 게임을 제공하는 것은 정신건강에 해롭다'며 강도 높은 비판을 했다. 

영국과 프랑스 정부는 게임 내 확률형 아이템의 '도박 요소'를 경계하고 이에 대응하는 움직임을 나타내기 시작했다. 서두에 언급한 EA 역시 스타워즈 배틀프론트2에 도입된 확률형 아이템 요소에 대한 유저들의 강한 반발에 일단은 결제 기능을 제거하며 한발 뒤로 물러서는 모습을 보였다. 

전세계적으로 확률형 아이템에 대한 우려가 심해지는데 국내 게임업계는 언제까지 자율규제를 주장할 수 있을까. '게임중독'이 이슈였던 시절에는 해외에서 게임을 바라보는 시선을 사례로 들며 스스로를 방어했던 것이 한국 게임업계다.

이젠 해외에서도 확률형 아이템을 비판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는 상황에서, 국내 게임업계는 어떻게 반응할지 귀추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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