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임과 영화는 종합 엔터테인먼트의 산물, 많은 인력과 큰 자금 투입.. 갈수록 격차 줄어들 것

히사이시 조 부도칸 콘서트 by 지브리 스튜디오 25주년

애니메이션 OST의 거장 히사이시 조는 그의 모더니즘 한 음악성을 지브리 스튜디오 작품들의 세계관을 예리하게 벼려냈다. 그리고 천공의 성 라퓨타, 이웃집 토토로, 바람계곡의 나우시카 등 OST에서 미아자키 하야오의 거의 모든 작품을 총괄 제작하며 전 세계인의 사랑을 받았다. 

이미 30년 가까이 된 작품들이 대부분이지만 아직도 많은 사람들은 그의 음악을 들으면 '하늘을 떠다니는 성(라퓨타)'을 떠올리고, '날렵한 고양이 버스(토토로)'를 생각한다. 그것은 음악만이 가진 마력이기 때문이다. 게임도 마찬가지다.

무미건조했던 미디음이 시대가 지나며 교향악단이 연주를 하고 락(Rock)이 나오고, 재즈(JAZZ)의 향연이 펼쳐진다. 게임의 세계관과, 스토리에 어울리는 음악이 쓰이기 시작하면서 오늘날의 게임은 영화와 함께 종합문화 콘텐츠로서의 가치를 인정받고 있다.

■ 게임은 잊혀져도, 음악은 기억하는 이유

영화나 애니메이션과 같이 게임도 OST를 듣고 있으면 문득 플레이 영상이 떠오르는 것은 애니메이션이나 영화를 봤을 때의 심상과 같은 이치다. 중학시절 8비트 게임에 열광한 기자의 경우 MSX로 출시된 팰콤사의 '이스3 OST'가 그랬다. 그 당시조차도 단순하기 그지없다고 느꼈던 BGM임에도 불구, 현재까지도 오래된 가요의 멜로디처럼 아스라이 남아있다. 시간이 지나도 콘텐츠의 인상을 결정짓고 오래도록 기억되게 만드는 중요한 요소인 것이다.  

세대에 따라 다르겠지만 게임센터에서 흘러나오던 테트리스와 보글보글의 BGM 역시 기억 못 할 사람은 아마도 많지 않을 것이다. 대결 상대마다 다르게 나오던 스트리트파이터2의 음악 또한, 흐릿한 플레이 기억 속에서도 선명하게 기억되는 건 박진감 넘치는 플레이 BGM일 것이다. 올드게임들을 예로 든 이유는, 게임은 우리 곁에 시간이 지나면 구식이 되면서 잊힐지 몰라도 게임 음악이 좋았다면 다시 한번 그 게임을 생각하게 되는 마법을 가졌기 때문이다.

■ 같으면서도 다른 게임과 영화의 음악

영화에서 음악을 다룰 때 소재와 분위기에 따라 재즈(카우보이비밥)나 오보에(미션) 곡을 사용하듯 게임에서도 황병기의 국악인 미궁(화이트데이)이나 스티브자브론스키의 클래식(이데아)을 사용했다. 이러한 음악적 요소는 영화나 게임의 세계관과 스토리, 그리고 유저가 받아들이는 감성이 여러 부분에서 같을 수밖에 없는 구조이기 때문이다. 

청각은 시각보다 더욱 깊게 플레이어의 심리를 자극하며 작품에 대한 몰입도를 높일 수 있다는 것은 이미 과학적으로 입증된 사실이다. 영화나 드라마, 애니메이션 등 관람을 요구하는 영상 콘텐츠들은 각 장면의 표현을 시각의 중요성은 물론 그것을 극대화하기 위한 효율적 수단으로 음악을 오랫동안 사용해왔다. 

물론 다른 점도 있다. 게임은 이에 더 보태어 음악을 통해 '현실의 나'와 '게임 속의 나'의 심리적 저항선을 해제하는 중요한 장치적 역할을 하고 있다. 애니메이션이나 영화가 관람객 입장에서 주인공을 바라보며 느끼는 3인칭적 시점이라면, 게임은 플레이어가 직접 조작하며 느끼는 체험적 콘텐츠이기 때문에 체험의 강도는 영화와는 비교가 되지 않을 만큼 강하다.

화이트데이에서 사용된 황병기의 '미궁'은 그 음악의 본질 자체만으로도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의 공포감과 심리적 압박감을 심어주는 실험 국악이다. 여기에 호러라는 장르가 입혀진 결과 이 게임의 공포감은 극대화됐으며, 한국의 호러 게임을 16년이 지난 현재까지 걸작으로 만들어낸 일등공신이 됐다. 이 게임은 청각의 극대화를 위해 모바일 버전에선 이어폰 착용이 필수이지만 그 공포감이 너무 크기 때문에 실제로는 스피커로 즐기는 플레이어들도 다수 존재한다.  

사실 '미궁'은  40년을 훌쩍 넘은 오래된 곡으로, 화이트데이의 제작 단계에서 별도로 만들어진 음악은 아니다. 실험정신이 강했던 이 음반은 당시 일부 음악인들 사이에서 알음알음 찾아 듣는 것이 전부였다. 하지만 화이트데이라는 게임과 접목되면서 대중에게 급속도로 전파되기 시작했다. PC판 화이트데이가 발매된 90년대 당시 불법복제 등 불미스러운 이유로 상품성을 잃었을 때부터 현재까지도 플레이어들은 '미궁'을 들으면 화이트데이를 자연스럽게 떠올리게 됐다. 

이렇듯 음악의 또 다른 장점 중 하나는 시간의 세례를 아무리 받는다 해도 이질감 없이 그대로 받아들일 수 있다는 것이다. 앞서 언급한 미궁 외에 지난해 인기를 끌었던 드라마 '응답하라 1988' 속 오래된 가요들이 다시 한번 인기를 끌은 것도 같은 이치다. 또한 '미궁'처럼 그 음악의 장르가 난해하고 무겁다 하더라도, 게임과의 궁합이 잘 맞으면 플레이어들은 어렵지 않게 그것을 받아들일 수도 있다는 것이 증명된 사례로 꼽을 수 있다. 

게임의 장르는 우리가 접하는 모든 문화 콘텐츠의 범주 안에 속해 있기 때문에 영화와 마찬가지로 현재 20대 유저가 플레이하는 게임의 음악을 50대 부모가 기억하며 '세대공감'까지 끌어낼 수 있는 중요한 장점을 가지고 있다.

월드 오브 워크래프트 OST 풀버전

게임 음악은 영화음악 보다 더욱 강렬하게 심리선을 자극한다. 영화는 관람자적(3인칭) 시점이지만 게임은 체험자적(1인칭) 시점에 있기 때문이다.

월드 오브 워크래프트의 게임 음악도 호드와 얼라이언스 각 진영의 세계관을 음악으로 극명하게 나타내주고 있다. 노움의 마을 놈리건에 진입하면 잃어버린 도시의 애환이 느껴지는 음악 들을 수 있고, 오크의 오그리마에 진입하면, 전투적이고 호전적인 넘치는 에너지의 배경음악을 들을 수 있다. 아이언포지에 진입하면 금방이라도 전쟁이 임박한 듯 망치질 소리와 함께 장엄한 배경음이 흘러나온다.    

이러한 면을 조목조목 살펴보면 게임 음악은 영화나 드라마보다 더욱더 세밀하고 정교한 음악성과 기술을 추구하는 장르로 해석된다. 예를 들어 얼라이언스 진영의 스톰윈드에 있는 대성당에 진입했을 때 평상시에는 성당에 맞춰진 고요하고 성스러운 배경음악이 나온다. 

그러나 대성당에 있는 음모와 배신 등의 문제가 얽힌 '퀘스트'를 진행할 때는 그 분위기를 청각으로 파악해 긴장감을 고조시킬 수 있도록 빠른 템포와 복잡한 심리상태를 나타낼 수 있는 아리아로 전환된다. 반면 같은 장소에 있더라도 해당 퀘스트를 진행하지 않는 플레이어는 평소와 같은 배경음악만 듣게 만드는 등 복합적이고 다중적인 설계가 이루어 진것이다.  

접속 종료를 하기 위해 여관으로 들어가면 내 집과 같은 안락함과 유흥이 표현되는 음악이 들린다. 이런 과정에서 플레이어는 효과음악들을 통해 게임의 세계관에 자연스럽게 빠져들게 된다. 이렇게 정밀한 작업을 걸치다 보니 음악에만 들어가는 시간도 늘어나고 그에 따라 비용도 천문학적으로 올라갔다. 

일례로 몇 해 전 피아니스트 양방언과 함께 제작한 엔씨의 '아이온'은 게임 음악 제작 기간만 3년, 제작비 10억 원이 투입됐다. 녹음은 런던 애비로드 스튜디오에서 74인조 런던 심포니 오케스트라와 작업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게임에 정성 들여 음악을 만드는 이유는 투자한 만큼의 결과물이 반드시 따라오기 때문이다.

■ 영화와 게임 OST의 경계 무너지다

영화음악의 거장 한스 짐머가 국내의 한 게임업체 OST를 제작 중이다

플레이어는 원하든 원치 않든 게임을 플레이할 동안에는 음악을 접한다. 그러면서도 음악의 한 장르에 편중되지 않고 많은 장르의 음악을 접하게 된다. 앞서 언급했듯 게임 음악은 영화와 같이 팝, 재즈, 클래식, 오케스트라, 성악, 국악 등 모든 음악의 장르를 총망라하고 있다. 

그렇기에 영화음악을 제작하던 거장들도 자연스럽게 게임 음악으로 유입되고 있다. 게임이 3D로 넘어오며 사실감을 강조되기 시작한 2000년대부터 도드라지게 나타난 현상이다. 게임의 질이 영화의 수준까지 올라가고 원작이 게임인 맥스페인, 툼레이더와 같은 영화가 등장하면서 음악의 경계도 무너졌다.

한스 짐머가 제작한 영화 OST (사진 출처= 네이버 영화)
스티브 자브론스키가 제작한 영화 OST (사진 출처= 네이버 영화)

이로 인해 전통 뮤지션들의 게임 음악에 대한 참여도 늘어나고 있다. 가수 윤상(아키에이지)를 비롯해 인터스텔라, 맨 오브 스틸, 인셉션, 배트맨 시리즈 등의 OST를 제작한 할리우드의 거장 한스 짐머(어쌔신 크리드, 모던 워페어, 블레스)와 트랜스포머, 진주만, 엔더스 게임 등의 음악감독을 맡았던 스티브 자브론스키(기어즈 오브 워, 배틀필드5, 이데아) 올드보이와 친절한 금자씨의 OST감독 최승연(SP1, 거신전기) 등의 음악인들은 작품성을 보고 제작을 결정한다는 소위 잘나가고 몸값 높은 뮤지션으로 유명하다.

왼쪽부터 한스 짐머, 스티브 자브론스키, 양방언(료 쿠니히코)

이러한 뮤지션들이 속속 게임 음악의 제작에 참여하고 있다. 그들이 말하는 내용 중 공통점은 '스토리가 있고 세계관이 있다면 그 어떤 작품에든 자신들의 음악을 녹여낼 수 있다'는 것이다. 그동안 영화를 주로 다뤘다면 음악과 영화와 게임의 간격은 무너져 내린지 오래다. 추구하는 방향과 세계관이 영화와 게임은 이제 더 이상의 간극이 없기 때문이다.

어쌔신 크리드 - 한스 짐머

21세기에 접어들면서 모든 문화는 상호 연결돼 있다고 봐도 무방하다. 영화가 게임으로 만들어진 건 80년대 아타리의 ET부터 백 투 더퓨처 등 무수히 많았다. 하지만 기술에 따른 표현의 한계와 더불어 개발사의 얄팍한 상술로 인해 영화의 2차 콘텐츠 수준에서 오랫동안 머물렀다. 

당시는 사운드는 논외로 두고서라도 그래픽으로 표현할 수 있는 것은 머리와 팔과 다리뿐인 도트 시절이었기 때문에 게임의 매력은 내 마음대로의 '조종' 자체에만 있었다. 어디가 산이고 누가 적인지 당해봐야 아는 그래픽에 음악으로 오케스트라를 넣었다면 그 게임은 조롱의 대상이 됐을 것이다.  

그러나 현재에 이르러선 역으로 게임이 어렵지 않게 영화로 만들어지고 음악도 마찬가지로 대중음악이 그대로 사용되거나 세계관에 맞춰진 모든 장르의 음악들이 게임만을 위해 새롭게 창조된다. 

그렇게 창조된 음악 또한 별다른 편곡 없이 다시 영화를 유입된다. 쌍방향 시대에 들어서면서 게임을 포함한 모든 문화콘텐츠들은 더 이상 오를 곳이 없는 수준까지 올라와 있는 상태며 그로 인해 콘텐츠와 콘텐츠 간의 조화는 더욱 활발하게 진행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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