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많은 명작 생산소, 도산 이후 이름을 되찾기까지 10년 넘게 걸려..

90년대 아케이드 게임 시장에서 캡콤, 반다이남코와 함께 거론되는 대표적인 회사가 있다. 12월1일자로 상호를 SNK 플레이모어에서 SNK로 변경한 업체가 바로 그곳이다.

일명 ‘신 일본 기획’(Shin Nippon Kikaku) 명칭의 약자를 쓰고 있는 SNK는 ‘The Future Is Now’ 라는 목표에 맞춰 수많은 명작들을 탄생 시킨 일본의 대표 개발사 중 하나라고 할 수 있다.

특히 경쟁사 캡콤과 반다이남코에 비교해 규모 면에서 작지만 이를 능가하는 수준의 역작들을 대거 선보이며, 90년대 도트 게임 시장의 선봉장으로 우리에게 잘 알려져 있다.

다시 돌아온 SNK. 이 과정까지 정말 오랜 시간이 걸렸다.

SNK의 게임 개발은 1979년부터 시작됐다. 80년대 ‘사이코 솔저’와 ‘이카리’ 시리즈 등으로 주목 받기 시작했고 1991년 ‘스트리트 파이터’ 프로듀서 니시야마 타카시, 마츠모토 히로시를 영입, 희대의 명작으로 손꼽히는 ‘아랑전설’을 선보이며 90년대 경쟁에 돌입하게 된다.

이후 1992년 당시라면 획기적인 시도였던 부상 및 ‘기력’ 게이지, 그리고 의상파괴(여성한정) 등을 넣어 화제가 된 용호의 권과 무기로 싸우는 대전 게임 ‘사무라이 스피리츠’, 각종 주역들을 모아 꿈의 매치를 실현한 ‘킹 오브 파이터즈’ 등을 매년 선보이며 큰 인기를 누렸다.

전설의 시작이자 '무적 기스 하워드'를 만든 게임 '아랑전설'

당시 캡콤의 스트리트 파이터2가 전 세계 게임 시장의 판도를 바꾸는데 성공했다면 SNK는 그 판에서 최고의 전성기를 구사하며 명작들을 매년 선보이고 있었던 것이다.

특히 2D 도트 그래픽에서는 정말 상상 이상의 수준을 보여주며 ‘시각적 완성도’를 예술로 승화 시킨 결과물들을 다수 보여줬다. 독특한 캐릭터성과 화끈한 액션성, 그리고 신선한 플레이로 무장한 SNK 게임들은 출시할 때마다 성공이라는 단어를 달고 나올 정도였다.

이때부터 SNK는 '두근두근 마녀심판'을 예상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90년대 후반 격투 게임의 열풍이 점점 줄어들기 시작하고 2D에서 3D로 트랜드 전환이 활발해지기 시작하면서 SNK는 주춤하기 시작한다. 당시 세가와 반다이남코의 주력 격투 게임이 3D로 등장해 큰 성공을 거두면서 많은 개발사가 3D 게임 개발에 착수한다.

SNK는 이런 상황에서 막대한 비용을 들인 ‘용호의 권 외전’과 휴대용 게임기 ‘네오지오 포켓’, 그리고 3D 환경을 겨냥한 ‘하이퍼 네오지오64’ 기판 등이 연이어 실패하며 도산 위기에 처한다.

네오지오 포켓.. 당시에는 꿈의 게임기 중 하나였다.

물론 킹 오브 파이터즈 시리즈가 꾸준히 성과를 기록 중이었고 사무라이 스피리츠 시리즈와 메탈 슬러그, 아랑 전설 시리즈 신작들이 시장 내 버티면서 이 위기는 벗어날 수 있을 것으로 보였다.

하지만 문제는 다른 곳에 있었다. 일본 츠쿠바 쪽에 과감한 투자로 만든 ‘네오지오 월드’ 테마파크가 엄청난 적자로 손해를 만들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로 인해 경영 측은 파칭코 슬롯머신 업체인 ‘아루제’를 통해 주식 500만 주를 신규로 발행하는 조건으로 80억 엔이라는 자금을 마련한다.

SNK 몰락의 대표 주범 중 하나인 용호의 권 외전

이를 통해 SNK는 킹 오브 파이터즈 2000을 비롯해 메탈 슬러그3 등을 선보이지만 이미 기울 때로 기운 분위기는 벗어나지 못했다. 결국 경영권을 획득한 아루제는 엄청난 수준의 적자를 감당할 자신이 없어 SNK의 대표적 인력을 뺀 후 2000년 말 법정관리를 신청하게 된다.

당시 SNK의 부채는 약 380억 엔. 2001년 10월 22일 SNK는 도산하게 된다. 여기서 아루제 입장과 팬들의 입장이 상반되는데 당시 상황에서 아루제가 선택할 수 있는 길이 거의 없었다는 걸 보면 어쩔 수 없는 수준이었다고 생각된다. 물론 팬들의 입장에선 아루제가 미울 수밖에 없다.

이후 SNK의 대표 개발자들은 아루제를 떠나 SNK 플레이모어와 딤프스 등 다른 경쟁사로 떠났고 지금도 그 인력들은 일본을 대표하는 다양한 게임들을 선보이고 있다.

충격과 공포 킹 오브 파이터즈 2001

그나마 SNK가 마지막에 희망의 불씨를 남겼던 SNK 플레이모어는 지금까지 보면 정말 그 역할을 제대로 했다고 볼 수 있다. SNK는 도산 전 킹 오브 파이터즈 개발팀을 계열사로 독립 시키고 도산 이후 킹 오브 파이터즈 2001을 출시하는 성과를 기록한다.

당시 이오리스와 브렛자 소프트는 킹 오브 파이터즈 2001을 출시하는데 많은 기여를 했다. SNK가 개발팀을 독립 시킨 결과이기도 했다. 이오리스는 당시 자금 확보를 위한 유통 및 투자를, 브렛자 소프트는 개발을 맡았다.

참고로 첫 킹 오브 파이터즈 시리즈 한글판 게임들의 출시에 대해서는 다음 기회에 다루는 것으로 하겠다. 이후 SNK 플레이모어는 SNK 관련 각종 지적재산권들을 공개 입찰을 통해 낙찰 받는데 성공하고 예전에 명성을 조금씩 되찾아 간다.

어쩔 수 없던 우려먹기.. 메탈 슬러그5

이 과정에서 아루제와 법적 분쟁 등을 겪어 가며 줄 소송에 휘말리기도 했다. 이 싸움에서 SNK 플레이모어는 대 부분 승소하게 됐다. 이렇게 만들어진 정식 이름이 SNK 플레이모어다. 기존에는 SNK 사용이 법적 문제로 불거질 가능성에 플레이모어만 사용했었다.

하지만 SNK 플레이모어로 시작된 2003년은 뼈 아픈 한 해이기도 했다. 당시 선보인 ‘사무라이 스피리츠 제로’ 정도 외는 거의 대부분의 게임이 최악의 평가와 함께 실패했기 때문이다. 이때 나온 게임은 ‘SNK VS 캡콤 카오스’와 ‘킹 오브 파이터즈 2003’ ‘메탈 슬러그5’ 등이다.

SNK와 콜라보레이션을 하면 망한다는 걸 보여준 사례.. SVC 카오스

이 게임들의 실패는 예상된 결과였다. 시리즈임에도 전작보다 못한 재미와 이상하게 바뀐 대전 시스템 및 밸런스, 그리고 콘텐츠 부족, 개발팀을 이끌 경험자가 없었다는 점 등 여러 문제가 산재해 있었기 때문. 결국 SNK 플레이모어는 우려먹기와 모바일, 파치슬로로 눈을 돌린다.

SNK 플레이모어의 흑역사로 손꼽히는 이 시기에는 ‘데이 오브 메모리즈’ 시리즈나 ‘두근두근 마녀심판’ ‘SNK 걸즈 아일랜드’ 등 미소녀를 소재로 한 묘한 게임들도 다수 선보였다. SNK IP를 활용한 파치슬로 게임 개발 역시 이때부터 주력 사업 못지 않게 중요시 됐다.

두근두근 마녀신판.. SNK의 본능이 나온 대표적인 작품

이후 2013년 ‘킹 오브 파이터즈13’ 외 마땅한 신작 없이 기존 사업에 주력했다. PS3와 Xbox360 등에서는 기존 시리즈들의 이식작을 선보였고 3D 게임 시장에서는 큰 활약을 보이지 않았다. 그래도 킹 오브 파이터즈13는 도트 장인 다운 면모로 기대 이상의 성과를 내기도 했다.

그리고 2015년 8월 중국 온라인 게임 기업인 37게임즈가 SNK 플레이모어의 지분 81.25%를 우리나라 돈으로 약 730억 원에 인수하면서 또 한 번의 변화를 겪게 된다. 37게임즈는 SNK 플레이모어가 가진 다수의 인기 IP를 확보하게 됐고 이를 통한 다양한 미디어 사업을 전개할 예정이다.

도트 장인이 돌아왔다! 킹 오브 파이터즈 13

2015년 10월 경에는 파치슬로 사업에서 철수하기로 결정했고 이후 PS4 독점 신작 ‘킹 오브 파이터즈 14’를 공개하며 본격적인 개발사 면모 찾기에 들어간다. 킹 오브 파이터즈 14는 3D로 나오는 해당 시리즈의 첫 번째 정식 넘버링 작품이자 현세대기로 나오는 첫 번째 신작이었다.

그리고 지금 2016년 12월1일 플레이모어를 완전히 뺀 ‘SNK’로 다시 사명을 변경하며 오랜 방황의 끝을 보였다.

이제는 3D에서도 아프지 말길.. 킹 오브 파이터즈 14

SNK는 90년대 아케이드 게임 시장과 2000년대 콘솔 플랫폼 시장을 경험한 세대에겐 애증의 개발사다. 수많은 명작부터 예상치 못했던 각종 사건, 사고, 한국과 일본, 중국 업체에게 각각 인수되는 참담함까지 그야말로 파란만장했던 시기를 보냈던 곳이었기 때문이다.

오랜 시간이 걸려 다시 제자리로 돌아온 SNK가 과연 우리에게 어떤 모습을 보일까. 다시 시작된 그들의 여정에 응원을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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