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주 스타크래프트 프로리그가 종료를 선언했다. 2003년 온게임넷(현 OGN)의 프로리그와 지금은 사라진 MBC게임 채널의 팀리그가 통합돼 출범했던 세계 최초의 팀 단위 E스포츠 리그가 이렇게 역사 속으로 사라지게 된 것이다. 게임의 패권이 전략 시뮬레이션에서 AOS, FPS 등 타 장르로 흘러가고 있음을 명백히 보여주는 일이다.

동시에 일 대 일로 진행되는 게임의 팀 단위 리그가 계속된다는 것이 쉽지 않음을 보여주는 일이기도 하다. 구조적으로도 취약한 부분이 있었기에 어둠의 마수를 피하지 못하기도 했다. 그럼에도 10년이 넘는 시간 동안 프로리그는 수많은 명장면을 연출하며 보는 이들에게 감동을 안겨줬다. 많은 스타들이 배출됐고, 그들이 펼쳤던 수많은 전투를 손에 땀을 쥐고 지켜봤던 또 많은 이들을 위해, 이번 지면을 통하여 스타크래프트 프로리그의 역사적 순간들을 돌아보는 기회를 가져보고자 한다.

광안리’란 이름의 맵이 나올 정도로, 부산 광안리는 E스포츠의 성지로 통했다

부산 광안리에서의 결승, 10만 명의 관중

2004년 4월부터 7월까지 열린 SKY 프로리그 2004 1라운드는 본격적인 스타크래프트 E스포츠의 전성기를 연 대회기도 하다. 리그 방식이 3전 2선승제로 변경, 11개팀 중 11위 팀은 2라운드에 진출하지 못하는 사실상의 강등제를 도입하여 리그 자체의 긴박감이 상승했다. 포스트 시즌 없이 페넌트레이스 1, 2위 두 개 팀이 결승에 진출하는 방식에서 최후의 두 팀은 한빛 스타즈와 SK 텔레콤 T1이었다.

결승이 진행된 장소는 부산 광안리였다. 결승날인 7월 18일, 부산 광안리에 마련된 경기장 앞에는 10만 여명의 관중들이 모여들었다. 휴가철이기에 많은 사람들이 있었던 때라 해도 10만이란 숫자는 정말이지 대단했다. 그야말로 인산인해. 이에 선수들은 최고의 경기로 화답했다. 7전 4선승제에서 최후의 7세트까지 가는 접전 끝에 한빛 스타즈가 4 : 3으로 짜릿한 승리를 거뒀다. 3 : 1까지 밀리던 한빛이 거둔 역전승은 수많은 사람들을 매료시켰고, 마침내 E스포츠는 정식 스포츠종목으로 채택됐다.

신한은행, 프로리그 스폰서쉽 – 세계 최초 군 프로게임 팀의 창단

신한은행이 개인리그였던 스타리그를 후원한 뒤, 팀 단위 리그인 프로리그의 스폰서로 결정되어 2007 시즌부터 10-11시즌까지 리그를 뒷받침했다. 이만한 대기업이 프로리그에 투자한다는 것 자체가 프로리그, 나아가 E스포츠가 발전해가고 있다는 하나의 지표로 보였다. 실제로 신한은행 측은 스타리그의 후원을 통해 젊은 층에게 깊은 인상을 남길 수 있었다.

이렇게 한국E스포츠협회와 신한은행은 리그를 공동으로 주최하며 E스포츠의 본격적인 전성기를 열었다. 다만 명이 있는 만큼 암도 있었는데, 광고 효과를 극대화하기 위하여 리그 경기 수를 대폭 늘렸고 이는 프로게이머들의 혹사와 경기력 저하로 이어지게 됐다.

또한 신한은행이 스폰서로 참여했던 시즌부터 공군이 프로게이머 팀 ACE를 창단하여 리그에 참여했다. 본디 공군 측에서는 프로게이머들을 전산특기병으로 뽑아 소프트웨어나 전자장비 유지보수 업무, 워게임 훈련 등에 활용하고 있었다. 여기에 당대 최고의 스타였던 임요환의 입대로 공군은 홍보목적을 위한 프로게임단을 창설하게 되었다. 강도경, 최인규 등 왕년의 스타들과 함께 시작된 공군 ACE는 이후에도 홍진호, 박성적, 박태민, 오영종 등의 스타플레이어들이 거쳐가며 높은 인기를 누렸다.

홍보 효과도 상당하여 공군 지원자들이 늘었다는 통계가 나왔으며, 해군에서도 프로게임단을 창설하려는 움직임이 있기도 했다. 그만큼 젊은층에게 E스포츠는, 스타크래프트 프로리그는 적지 않은 영향력이 있었다.

스타크래프트 저작권 분쟁

 

 


 

 

협회와 블리자드는 평행선 같은 대립 끝에 겨우 타결을 이뤘다

게임과 E스포츠의 태생적인 한계를 드러낸 사건이기도 했다. 스타크래프트는 분명 블리자드 엔터테인먼트가 만들어낸 하나의 게임 상품이다. 게임의 근본적인 목적은 ‘놀이’다. 헌데 E스포츠 산업은 게임 수준의 기대치를 훌쩍 뛰어넘게 성장했다. 맨 땅에서 자라난 작은 씨앗이 하나의 거대한 산업이 되어버린 것이다. 방송이 시작된 이후 일정 이상의 수익과 이에 대한 기업 차원의 후원, 그리고 팬덤의 형성으로 인해 이전의 ‘놀이’ 수준으로는 도저히 생각할 수 없게 됐다. 즉 이 사태는 E스포츠라는 하나의 분야가 제대로 자리잡기 위해서는 필수불가결한 과정이었다.

이와 관련된 최초의 일은 2007년 프로리그 중계권 사태였다. 프로리그의 권리가 누구에게 있는가를 둘러싼 이 분쟁에서 정작 가장 중요한 게임을 제작한 블리자드는 사실상 배제돼 있었다. 게다가 프로리그라는 컨텐츠를 처음 만들어냈던 것은 온게임넷이었고, MBC게임은 대승적 차원에서 자사가 운영하던 팀리그를 프로리그에 합병시키는 데 동의했던 바 있었다. 헌데 당시 협회가 이 중계권이 자신들에게 있고 그것을 판매하겠다고 주장한 것이다.

차후 2010년에 이르러서는 스타2 발매를 앞둔 블리자드가 자신들의 게임을 방송할 권리를 전부 곰TV 측에 넘기겠다 선언했고, 결국 10-11시즌의 프로리그는 ‘불법리그’라는 오명을 뒤집어쓸 수밖에 없었다. 사태는 대립을 벌이던 블리자드와 협회가 라이선스 계약을 맺음으로써 일단락되었다. 그러나 이 과정에서 선수들과 팬들의 입장은 철저히 외면당했고, 리그의 인기는 내리막을 걷기 시작했다.

E스포츠가 9시 뉴스에 첫 등장한 일이 승부조작 때문이었다

스타크래프트 승부조작 사건, e스포츠의 취지 위기 닥쳐와

그리고 스타크래프트를 넘어 E스포츠 최악의 사건이 터졌다. 2010년 4월 12일, 한 E스포츠 언론사에 승부조작을 다룬 기사가 처음으로 올라왔다. 팬들은 설왕설래했으며 본격적인 검찰의 수사가 이뤄졌다. 결국 조사 끝에 승부조작에 가담한 것으로 알려진 전현직 프로게이머 11명의 명단이 공개됐다. 이중 네 사람은 도박단과 프로게이머들을 연결하는 브로커 행위를 일삼은 것으로 드러났는데, 이 가운데 당대 최고의 저그 게이머였던 마재윤이 있었음은 팬들에게 엄청난 충격으로 다가왔다.

무형의 종족이었던 저그에게 3해처리 및 디파일러 운영이라는 정석을 선물했던 게이머였고, 이를 통해 한때는 누구나 인정하는 최강자의 자리에까지 오르며 무수한 영광을 맛보았던 선수가 마재윤이었다. 팀 대 팀의 대결이었지만, 한 개 세트가 오롯이 개인 대 개인 간의 대결로 이루어진다는 점은 승부조작이 쉽다는 이야기와 다르지 않았다. 어린 나이의 게이머들은 검은 돈에 유혹에 손쉽게 넘어가고 말았다. 결국 검찰 조사 및 재판 끝에 11명의 승부조작은 모두 사실로 드러났다.

대부분은 집행유예 및 사회봉사, 도박 치료 프로그램 이수 등의 형으로 마무리되었으나 리그의 인기는 악화일로를 걸었다. 젊음만이 가지고 있는 패기와 열정, 이것이 다른 분야와 차별화되는, E스포츠가 가지고 있던 이미지였고 또 강점이었다. 이러한 강점이 더럽혀진 사건이었기에 타격이 없을 리 만무했다. 신한은행은 프로리그와의 후원 계약을 마친 뒤 재계약을 연장하지 않았으며, 프로게임단들은 하나하나 해체를 선언하기 시작했다. 바깥에서 후원을 구하지 못한 협회는 결국 회장사인 SK텔레콤이 스폰서를 맡게 되기에 이르렀다.

스타크래프트와 스타크래프트2의 리그 병행

이영한과 장윤철이 벌인, 프로리그의 마지막 스타크래프트 1 공식전 경기
 

2012년 5월부터 시작된 SK플래닛 스타크래프트 프로리그 시즌2. 이 시즌에 협회는 프로리그에서 스타크래프트와 스타크래프트2를 병행하기로 결정했다. 이 결정이 무엇보다도 안타까웠던 것은 직접 경기를 해야 할 프로게이머들의 고생이 배가 되었다는 점이었다. 야구와 소프트볼이 비슷해 보인다 하더라도 엄연히 다른 종목이듯, 스타크래프트와 스타크래프트2는 너무나도 다른 게임이었다.

이 다른 게임을 동시에 연습해야 하는 선수들 입장에서는 리그 진행 자체가 너무나도 고된 일이었다. 결국 경기력은 저하되었고, 성공적인 연착륙을 이루었다 말하기에는 여러모로 부족한 점이 많았다. 팬들 역시 두 게임을 완전히 다른 게임으로 받아들였기에 스타1의 팬덤이 스타2로 자연스럽게 넘어오는 데에도 애로사항이 많았다.

SK플래닛 스타크래프트 프로리그는 12-13 시즌부터 스타크래프트2로 완전 전환되었으나, 팬들의 인기가 떨어지자 게임단도 유지될 수 없었다. 공군 ACE는 해체되었고, 위메이드 폭스, 화승 OZ, MBC GAME HERO의 게임단이 해체되며 공중에 뜬 선수들로 이루어진 제8게임단은 시즌이 끝나가도록 스폰서를 구하지 못했다. 결국 2013년에 이르러서야 진에어가 이 팀의 네이밍 스폰서를 맡게 되며 팀 해체의 위기를 겨우 넘겼다.

스타크래프트 1 팀들이 연이어 해체되며 GSL을 무대로 활동했던 스2 팀들과 함께 리그가 진행되기 시작했으나, 리그 자체의 인기를 회복하기엔 아무래도 어려움이 있었다. 결국 또 한 번의 승부조작 진통을 겪은 끝에 마지막 시즌은 7개 팀이라는, 프로리그 역사상 최소 팀으로 리그가 진행됐다.

저작권자 © 게임플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