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드벤처의 매력은 흥미롭게도 롤플레잉과의 경계에 있다. 롤플레잉은 말 그대로 역할분담과 이를 통해 헤쳐 나가는 모험에 중점을 둔다. 시나리오에서 필요한 사건을 해결해가며 최종목적을 향해 도달하는 사이에 수많은 자그마한 일들이 널려 있는 병렬적 시나리오를 가지고 있다.

메인 퀘스트와 서브 퀘스트라는 말로 설명할 수 있을 것이다. 반면 어드벤처는 주어진 임무를 해결하기 위해 단일 시나리오를 걷는다. 하나의 문제를 해결한 뒤 자신이 가고픈 곳을 향하는 것이 아니다. 다음에 다가올 문제는 이미 정해져 있고, 그 문제를 해결하면 또 다시 다음 과제가 주어진다. 직렬적 구조다.

즉 어드벤처의 매력은 든든한 동료나 모든 것을 할 수 있는 자유도가 아닌, 자신이 직접 그 세계의 한복판에 뛰어들어 문제를 해결해나가는 과정에서 얻을 수 있는 몰입감인 셈이다. 몰입감을 위해 가장 필요한 것은 바로 눈에 직관적으로 보이는 것, 바로 그래픽의 요소였다.

시에라의 창립자 켄 윌리엄스의 아내인 로베르타 윌리엄스는 텍스트로만 이루어졌던 어드벤처 게임의 시각적 구현화를 시도했다. 남편과 함께 가내수공업으로 만들어진 게임, 바로 1980년도작 ‘미스테리 하우스’였다.

이 게임은 단선으로만 구현된 단순한 그래픽을 마치 그림책처럼 추가했을 뿐이었지만 업계에는 상당한 충격을 던졌다. 이 작품을 기폭제로 윌리엄스 부부는 금융, 통신, 데이터베이스 관련 업체였던 시에라를 본격적인 게임회사로 전환한다.

윌리엄스 부부는 이후 제작한 킹스 퀘스트를 통해 직접 캐릭터를 움직여가며 게임의 오브젝트를 클릭하며 진행, 퍼즐을 푸는 포인트 앤 클릭 방식을 도입했다. 이 역시 패러다임의 전환을 불러옴과 동시에 어드벤처라는 장르를 메이저로 만들어냈다. 몰입감을 높이기 위하여 그래픽만큼이나 중요한 요소인 스토리 역시 발달하게 되었다.

때문에 당시 어드벤처 게임의 스토리는 다른 장르의 게임들에 비해 독보적으로 높았다. 시에라의 가브리엘 나이트 시리즈와 래리 시리즈, 루카스아츠의 인디아나 존스 시리즈와 원숭이 섬의 비밀 시리즈 등 명작들이 배출되며 어드벤처의 전성기가 열렸다. 기술의 발달과 서사의 발달, 이 두 가지 요소가 혼합되며 정점을 보여준 작품이 바로 1993년작 ‘미스트’였다.

랜드 밀러와 로빈 밀러 형제가 만들어낸 1인칭 퍼즐 어드벤처 미스트는 당시로서는 놀라울 정도의 그래픽을 보여줬다. 더불어 이야기 역시 파격적이었는데, 기존의 직선적인 이야기 구조를 해체하여 플레이어가 스스로 이야기를 알아내고 또 만들어 나가도록 구성했다. 처음 게임을 시작하면 무엇부터 해야 할지 알 수 없을 정도로 말이다.

이에 어울리게 설정 또한 방대하여 외전 격의 소설이 출판될 정도였다. 시대적 발전의 결과물인 미스트는 엄청난 인기로 인해 PC판 판매량만 700만장이라는 대성공을 거둔다. 하지만 역설적이게도, 미스트는 많은 이들의 호평과 함께 향후 어드벤처 장르의 하락세에 기여했다는 악평까지 거두게 된다.

어드벤처 장르 하락세의 가장 큰 원인은 발전이 멈추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래픽의 향상과 더 높은 그래픽을 보장하기 위한 CD롬이라는 새로운 매체의 등장은 다른 장르의 게임에서도 어드벤처를 뛰어넘는 그래픽과 스토리텔링을 가능케 했다. 여기에 미스트의 성공은 ‘이야기의 해체’를 불러왔다.

미스트를 벤치마킹하겠다며 쏟아진 작품들 중 상당수가 퍼즐에만 치중한 채 설정 및 이야기를 뒷전으로 미루거나 일부러 꼬아놓기 시작한 것이다. 무조건 현학적이고 고답적인 분위기로 만든다고 하여 고상한 고급 게임이 될 리는 없다.

적어도 플레이하는 게임이 단순한 퍼즐 게임인지, 어드벤처 게임인지 헛갈릴 정도가 되어서는 안 됐다. 기본도 갖추지 못한 작품들이 범람하면서 어드벤처라는 장르는 고유의 매력을 잃어버리고 침체기로 접어들기 시작했다.

정통 어드벤처 게임이 시장성을 상실한 결과, 명가라 불리던 시에라와 루카스아츠마저 어드벤처 게임 제작을 그만두게 된다. 결국 어드벤처 장르는 새로운 길을 모색해야만 했는데, 여기서 나타난 작품이 툼 레이더였다.

기존 어드벤처 장르의 문제 해결 방법을 퀴즈나 함정이 아닌 액션으로 바꾼 것이다. 이러한 시도는 많은 이들에게 영감을 불러왔고, 어드벤처 장르는 타 장르와의 혼합을 통해 명맥을 유지하게 된다. 이는 현대에 이르러서도 마찬가지다.

텔테일 게임즈는 정통 어드벤처를 만들다가 잘 팔리지 않자, 퍼즐적 요소를 줄이고 스토리 연출에 주력한 워킹 데드 시리즈를 내놓아 호평을 받았다. 언차티드와 같은 게임서 볼 수 있는 저널 시스템, 다음 단계로 진행하기 위하여 특정 아이템을 구해야만 하는 것 역시 어드벤처가 가지고 있는 요소였다.

우리가 액션 어드벤처, 호러 어드벤처, 생존 어드벤처 등으로 일컫는 장르의 게임들이 나타나며 어드벤처 장르는 다른 장르에 기댄 채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

보았듯이 정통이라 할 수 있는 포인트 앤 클릭 방식의 어드벤처는 여전히 힘들다. 지금에 이르러서는 간단한 기술력과 적은 인력으로도 만들 수 있는 게임이기에 인디 시장에서 발매되는 신작이 아예 없지는 않지만, 소위 대박이라 부를 만한 작품은 없는 것이 현실이다.

미스트와 더불어 어드벤처 장르의 명작으로 불렸던 ‘7번째 손님’이 거의 20여년 만에 3편을 만들고자 투자자를 모았지만, 끝내 제작비를 모으지 못해 제작을 취소하게 되는 등 정통 어드벤처 장르의 전망은 그리 밝지 못하다.

이러함에도 순수 어드벤처 장르로서의 생명력이 완전히 꺼졌다고 말하기는 어려울지도 모른다. 인터넷으로 간편하게 공유할 수 있는 플래시 게임, 혹은 휴대용 게임기나 스마트폰 등을 플랫폼으로 하는 게임들 중 어드벤처에 가까운 작품들이 성공을 거둔 경우도 있다.

‘방 탈출’로 대표되는 장르는 어드벤처의 하위 개념에 있다. 검은방, 회색도시 등의 시리즈가 떠오를 것이다. 여기에 역전재판 시리즈 역시 어드벤처의 아이템 구하기, 일직선 스토리 진행 등 여러 면에서 어드벤처에 가깝다. 포인트 앤 클릭 방식의 명작 중 하나인 원숭의 섬의 비밀 시리즈가 PC에 이어 스마트폰으로 리메이크되기도 했다.

기술의 발달로 인해 전성기를 지나 몰락기를 거친 어드벤처 장르지만, 기술이 발달이 그 명맥을 이어오고 있다 해도 과언은 아니다. 어드벤처 장르의 최고 강점은 앞서도 말했던 몰입감에 대한 부분이었다.

과거에는 그래픽과 스토리텔링으로 이를 해결했지만, 이제는 포켓몬 GO를 위시한 증강현실게임의 시대가 다가오고 있다. 몰입을 위한 최적의 환경이 또 한 번 이 시점에서, 어드벤처란 장르는 또 한 번 부활의 기치를 올리며 한 걸음의 진화를 이룩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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