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켓몬 GO’의 열풍이 대단하다. 속초는 태초마을로 불리게 되었고, 속초 시장님이 오박사님의 코스프레를 한다. 포켓몬 GO란 게임의 간단한 진행방식과 아직은 다양하지 못한 콘텐츠를 생각하면 사뭇 놀라운 일이다.

몬스터볼을 던져 만나는 포켓몬을 잡는다. 레벨 5가 되면 용기, 신비, 본능 중 한 진영을 선택한다. 선택한 진영에 따라 맞닥뜨린 체육관에서 공격 혹은 방어, 훈련을 행하게 된다. 전투는 상대 몬스터를 연타하거나 길게 누르는 방식으로 해결된다.

기존 포켓몬스터 게임들이 가지고 있던 전략성을 발휘할 여지는 많지 않다. 야생 포켓몬과의 전투가 없어 포켓몬 포획 과정은 단순해졌고, 배틀 및 트레이드 시스템 역시 없다. 게임으로서의 깊이를 따지자면 그리 훌륭하다 말하기는 어려운 셈이다. 그럼에도 이 게임이 성공할 수 있었던 이유는 하나다. ‘나’ 자신이 포켓몬 트레이너가 되어 직접 움직여야 한다는 것이다.

닌텐도가 모바일 게임 시장에 본격적으로 진출하며 내놓은 처녀작이 자사 최고의 브랜드였던 슈퍼마리오 시리즈가 아니라 포켓몬스터 시리즈라는 점은 생각해 볼만 한 부분이다. 포켓몬스터의 팬이고, 만화를 봐온 사람이라면 누구나 한 번쯤 생각해보았을 것이다. 

‘나도 포켓몬 트레이너가 되고 싶다!’ 초대 포켓몬 세대, 즉 현 20대에서 30대의 대부분은 스마트폰을 소지하고 있다. 기존의 일반 휴대용 게임기로 출시되었다면 이만큼의 성공은 어려웠을지 모른다. 포켓몬스터 팬덤이라는 전 세계에 고르게 분포된 사용자 기반을 토대로, 하드웨어와 네트워크라는 조건이 맞아떨어지는 스마트폰 기기라는 두 조합이 이만한 성공을 불러일으킨 셈이다. 실제로 포켓몬 GO의 조상격이라 할 수 있는 게임인 ‘포켓몬 AR 서처’는 이만한 성공을 해내지 못했다.

또 다른 게임 하나를 들여다보도록 하자. 최근 가장 말도 많았고 탈도 많았던 ‘창세기전4’의 경우다. 게임성에 대한 이야기는 다른 곳에서도 얼마든지 찾아볼 수 있기에 크게 언급하지 않으려 한다. 중요한 것은 4라는 공식 넘버링을 단 작품임에도 불구하고, 게임의 구조 자체가 기존의 시리즈와는 너무나도 다르다는 것이다. 

기존의 시리즈는 SRPG를 바탕으로 주연 캐릭터들의 화려한 필살기로 수많은 적을 처치하는 쾌감을 전략적 요소보다 우선시해왔다. 같은 장르인 랑그릿사 시리즈에서도 룬스톤을 활용하여 캐릭터를 다시 키우는 일을 반복하면 비슷한 일이 가능했지만, 창세기전 시리즈는 설정 상 최강인 캐릭터가 곧 게임 내에서도 압도적으로 강한 면모를 보였다. 이는 나름의 장르적 실험을 시도했던 외전 시리즈에서도 마찬가지였다. 국내 게임 역사에 남을 캐릭터인 흑태자는 강자들이 즐비한 게임 시스템 안에서도 명실상부한 최강이었기에 유저들에게 커다란 인상을 줄 수 있었다. 하지만 창세기전4는 기존의 시리즈와 전혀 다른 방법론을 제시했다.

과거의 캐릭터들은 불러왔지만, 그들이 가진 필살기는 이름만 남긴 채 위력을 거세시켰다. 탱커와 딜러, 힐러 및 던전 개념을 차용했다. 이는 기존 팬들에게 실망을 안겨다 준 가장 큰 요인이었다. 애초에 창세기전 시리즈의 매력은 SRPG로서의 높은 전략성이 아니라 매력적인 캐릭터들과 그들이 보여주는 호쾌한 필살기에 있었기 때문이다.

기존의 팬들이 좋아했고 또 다음 넘버링 작품에서도 기대했을 부분을 창세기전4는 외면했다. 대신 CCG(Collectible Card Game; 수집용 카드 게임).와 꼭 닮은 아르카나 수집을 내세웠다. 추억을 모으라고 말은 하지만 그들이 내민 추억은 유저들이 가지고 있는 기억과 근본적인 부분에서 다른 셈이다. 기존 디자인과는 전혀 다른 이미지로 그려진 새로운 캐릭터 일러스트가 공개되자 유저들 사이에서 갑론을박이 벌어졌던 일 역시 이와 비슷한 맥락이다.

최근 가장 화제를 불러일으킨 신작 게임 발표 소식 중 하나를 꼽으라면 단연 ‘파이널 판타지 7’이다. E3 2015에서 해당 작품의 리메이크가 공식 발표된 후, 스퀘어 에닉스의 전체 주가는 단 한 시간 만에 시가총액이 143억엔, 한화로 약 1,300억원 급등했다. 그러나 스퀘어 에닉스가 분할 발매를 발표하고, 게임플레이 영상이 뜨면서 우려하는 유저들도 생겨나기 시작했다.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전투방식은 최근 파이널 판타지 시리즈에서 보았던 것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아직 15편도 발매되지 않았으니 이 게임이 나오려면 적잖은 시간이 걸릴 것이다. 어떤 모습으로 우리 앞에 모습을 보일지는 좀 더 두고 볼 일일 것이다.

근대 비평의 아버지라고 불리는 프랑스의 문학자 생트 뵈브는 이런 말을 남겼다. “시간은 흘러 다시 돌아오지 않으나, 추억은 남아 절대 떠나가지 않는다.” 바람의 나라, 메이플스토리, 마비노기와 같은 오래된 게임들을 즐기는 유저들이 여전히 적지 않다는 것을 떠올려보자. 우리는 추억에게 냉정하지 못하다. 따뜻함을 가지고 바라보고, 보듬고 소중히 여긴다. 

그것을 있는 그대로 되새길 수 있음에 감사히 여기며, 누군가 그것을 망가뜨리려 한다면 참을 수 없는 기분을 느낀다. 어딘가 결여되어 있다면 결여된 채로 아름다운 것이 곧 추억이다. 물론 이를 잘못된 것이라 말할 수는 없다. 추억이 추억으로 주조될 수 있었던 건 그 정도의 가치가 있었기 때문이다. 바람의 나라를 비롯하여 언급한 작품들은 우리나라에서는 처음으로 시도되는 것들, 소위 ‘도전’을 해내 성공한 작품들이다.

기존의 것들을 무조건 불러온다고 하여 성공이 보장되지는 않는다. 그것을 무조건 현대적인 방식으로 재조립한다고 하여 성공하는 것도 아니다. 현대의 감성과 기술로 무엇을 함부로 채우려는 시도보다는, 현대의 것을 통해 기존의 것을 어느 정도의 깊이로 체감하게 해주느냐에 따라 성공과 실패의 갈림길이 정해지는 것인지도 모른다. 우리가 원하는 것은 결여된 추억의 아름다움 그 자체이지, 그것을 부수어 멋진 형태로 재조립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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