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러 가지 명분이 있었지만 오토를 이용하는 유저의 대부분이 정상적으로 게임을 즐기지 않고 속칭 반복적 몹 잡기인 ‘노가다’를 통해 재화를 획득했습니다. 이것을 아이템 거래 사이트에서 팔았죠. 이렇게 작위적인 거래는 인플레이션이 오고 아이템 가격이 크게 치솟는 등 게임 속 경제가 충격을 받았습니다. 게임 속 인플레이션은 신규 유저들의 진입장벽이 높아지게 만드는 요소 중 하나입니다. 

 
이러한 이유로 ‘오토유저가 많아지면 게임이 망한다’는 유저들의 인식과 오토 유저를 방치하면 정상적으로 게임을 해온 유저들의 상대적 박탈감이 커지고 이로 인해 플레이 욕구가 저하되며 결국 게임을 떠나게 되는 현상이 빈번했습니다.
    
악으로 취급받던 오토, 모바일에서 '환생'

온라인 게임에서 푸대접을 받던 오토는 모바일 시대에 접어들면서 전성기를 맞았습니다. 모바일에서도 RPG 게임이 물밀듯 서비스되면서부터 오토는 선택을 넘어 필수로 자리 잡았죠. 대부분이 자동사냥을 지원하고 있으며 오토 기능이 없는 게임은 외면당하기 십상입니다. 스마트폰 특성상 게임에만 집중할 수 없는 환경에 반해 RPG는 반복 전투가 필수 요소이기 때문입니다.
 
모바일 RPG에선 온라인처럼 많은 노력을 필요로 하지 않습니다. 방대한 필드를 찾아다니며 퀘스트를 받을 일도 없고 사냥터에서 자리싸움을 하며 재료를 수집하지 않아도 됩니다. 몇 차례 반복만 하면 만렙도 쉽게 만들 수 있습니다. 시스템이 알아서 다 해주고 그것도 모자라서 2배속 빠른 진행도 할 수 있으며 그것도 귀찮으면 ‘즉시 완료권’을 이용할 수 있게 됐습니다.
 
아이템이나 재화 거래가 되지 않으니 당연히 온라인과 같은 경제 시스템도 없습니다. 경제 시스템의 부재는 커뮤니티의 단절로 이어졌죠. 컨트롤도 채팅도 모두 힘든 모바일 환경의 태생적 한계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오토는 RPG에서 두각을 나타냈습니다.
 
그렇다면 오토 RPG가 왜 재미가 있을까요?

모바일 RPG는 게임에 적극적으로 참여하지 않고 행하는 관찰자적 시점의 성향이 큽니다. 거기에 강력한 캐릭터를 ‘수집’하고 이것을 ‘대결’ 시키는 놀이는 사실 오래전부터 존재해 왔습니다. 최근 RPG와 카드 배틀이 융합된 게임들이 속속 등장하는데, 이러한 게임성은 이미 1980년대부터 이어져 왔습니다.   

당시 문구점에서 20원씩 팔던 동그란 '딱지'는 ‘미래소년 코난’과 같이 인기를 끌던 만화영화의 캐릭터를 중심으로 만들어졌습니다. 만화 캐릭터의 중요도에 따라 별수가 높았으며 중요도가 낮으면 별 숫자는 작았습니다. 게임의 승리는 별수가 많은 딱지가 이기는 방식으로 현재 서비스되고 있는 게임들과 많은 면에서 닮아있습니다.
 
즉, 모바일 RPG의 재미는 수집과 대결이라는 오래전부터 있었던 놀이가 현재 시대에 맞게 진화한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과거 ‘유희왕’ 카드나, 최근 어린이들 사이에서 유행하는 ‘터닝매카드’ 역시 같은 개념입니다. 온라인이 현실과 같은 시간을 가지고 유저 간 대립이었다면,  
    
온라인게임의 핵심이 '소통'이라면, 모바일에서 '소통 부재'는 태생적인 한계도 있습니다. 하지만 모바일 게임을 즐기는 유저들 자체의 성향도 점차 커뮤니티의 중요도가 낮아지고 있는 모습을 보이고 있습니다. 카카오톡 게임을 중심으로 시작된 모바일 게임들은 커뮤니티의 확장 개념보다는 현재 네트워크가 돼 있는 지인과의 게임으로 진행됐고 이미 고착화 단계에 접어들고 있습니다.   

온라인 게임이 일반적인 경쟁 및 대결의 구조였다면 모바일 RPG는
결과론 적인 접근을 기반으로 '목적'에 집중돼 있습니다.

이러한 유저 성향의 변화에는 현재 우리 시대의 세대 변화도 반영돼 있습니다. 모바일 RPG를 즐기는 세대들은 기존 세대들과 달리 누군가와 함께 게임을 즐기는 것보단 단독적인 플레이를 더 선호하는 모습이 강합니다. 지난해 지스타 기자 인터뷰에서 '파이널 판타지 14 온라인'을 제작한 ‘요시다 나오키’는 한국의 올드 유저들이 게임에 접속했을 때는 게임의 적응을 잘하는 반면 젊은 유저층에선 방대한 맵 자체에 질려 초반에 게임을 그만두는 성향이 뚜렷하다고 말한 바 있습니다. 이런 현상은 복잡한 시스템을 가진 온라인 게임의 경우 젊은 유저들은 염증을 느끼고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보다 간편하고 쉬운 즉, '알아서 다 해주는' 게임으로 눈을 돌리고 있는 것입니다.

 

물질 만능이 되어 버린 게임 생태계  

모바일 RPG가 대세가 되면서 과금 방식은 더욱 복잡해졌습니다. 게임을 정상적으로 진행해 나가는데도 재화가 필요하며 이것이 다 떨어지면 게이지가 찰 때까지 기다리거나 돈을 주고 별도로 구매해야 합니다. 현재 상태로 진행하면 미션 실패만 계속 뜨기 때문에 캐릭터의 강화도 필수가 됐습니다. 강화에는 재화가 따르는데 재화 역시 돈이죠. 게임 진행은 오토가 알아서 해주기 때문에 유저는 현금을 쓰고 조합만 잘해주면 됩니다.
 
온라인에서는 월 2~3만 원만 있으면 원 없이 게임을 할 수 있었습니다. 게임 진행에 필요한 아이템은 퀘스트만 해도 받을 수 있었고, 플레이 타임이 길면 길수록 아이템의 색상도 바꿀 수 있었습니다. 정액제 비용을 제외하면 무과금으로 게임의 진행이 가능한 수준이었습니다.
 
모바일 환경이 현재처럼 변화되며 게임 속에서도 ‘물질 만능론’이 생겼습니다. 시간 투자 없이 돈으로 재화를 구입해 ‘뽑기’를 많이 하면 원하는 아이템을 가질 수 있습니다. 원하는 아이템이 없으면 또 구입하면 됩니다. 결국 ‘게임에서 레벨은 현실의 돈’이라는 공식이 만들어졌습니다. 

모바일에서 자동사냥은 온라인과는 완전히 다른 개념으로 태생적 '상징성'을 갖습니다. 하지만 노동의 대가가 줄어든 만큼 비용으로 보상해야 하는 우리 사회의 시스템을 단적으로 볼 수 있습니다.

게임 속에서 높은 레벨과 강력한 장비를 가질 수 있는 유저는 결국 게임에 얼마만큼 돈을 썼는지로 판가름 나게 됐고 그 안에서 클래스가 나눠지고 있습니다. 업체들은 이들에 대한 분류를 ‘헤비유저’ ‘라이트 유저’로 구분합니다.
 
물론 게임업체의 입장도 있습니다. 구글이나 애플 앱스토어에 게임을 올리면 유료 결제 시 매출의 30%가 수수료로 빠져나갑니다. 또, 카카오톡 같은 플랫폼에서 21%의 수수료가 추가로 빠져나갑니다. 결국 모바일 게임은 플랫폼 임대료 만으로 매출의 절반 이상이 나가는 구조이기 때문에 유료 정책을 더욱 강화할 수밖에 없다고 항변합니다. 

이런 상황에선 결국 모든 문제는 다시 '가치'로 회귀됩니다. 유저들은 이미 가치에 대한 판단이 명확하게 서 있는 상태입니다. 모바일 게임은 대부분 부분 유료이기 때문에 쉽게 다운로드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자신과 안 맞는 게임이면 가차 없이 삭제합니다. 반대로 가치가 있는 게임에는 돈을 아끼지 않는 모습을 보이고 있습니다. 온라인 게임과 달리 평가가 무서울 만큼 냉정합니다. 이것 역시 결국 게임회사들이 만든 룰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이제 칼자루는 유저의 몫으로 남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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